간간이 젖어 드는 잔 솔바람에
흔들리다 멈추어버린 이로 하여금,
그렇게 세상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퇴색한 과거의 뒷모습을 묻어두었다
기다림의 봄에는
오방색 옷고름 꽃을 풀어내고
주르륵 여름에는
장맛비에 젖은 땅을 훔쳐냈다
빛바랜 가을에는
떨어져 뒹구는 낙엽에 물들고
창백한 겨울에는
새하얀 눈꽃의 설렘을 찾았다
텅 빈 내 가슴은
인연이란 초연의 삶을 쓸어내렸고
촛불 같은 내 인생은
멈추지 않을 세월의 시계만 쓸고 있었다.
이진섭 시인의 <싸리 빗자루>
지난 일도, 인연도, 감정도 담아두지 않아야
덜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비워 지지가 않습니다.
머뭇거리는 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켜켜이 쌓인 감정들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긴 한숨에도, 실바람에도, 가랑비에도 휘청휘청.
혹여 쓰러지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아
가장 오래된 묵은 마음부터 조금씩 내려놓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