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단독주택 주인집 아들과 임차인 아들로 만났습니다.
마포구 공덕동에서 그렇게 살다가 재홍이네가 청파동으로 이사가면서 우리도 동반 이사를 했지요.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를 집을 바꿔가면서 승계한 드문 경우인 것 같습니다.
한겨울이었습니다. 자다보니 꿈 속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심하게 괴롭히면서 깨우셨습니다. 그 휘두르는 지팡이를 피해서 벌떡 일어나 창호지문짝을 부수고 마당에 쿵 떨어지는 바람에 정신이 들어서 다시 부서진 문짝을 치우고 방에 들어가니 잠든 가족들이 무심결에 지린 오줌으로 방바닥이 흥건했습니다. 연탄개스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침에 재홍이네 아버지는 우리 방에 와서 백배사죄하고 장롱 밑 쥐구멍은 잘 틀어막고 사건은 잊혀졌습니다. 임차인과 임대인은 부서진 문짝과 임대인의 안전의무 불이행을 서로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재홍이는 등교 시에 엄마와 한판 승부를 보고서야 집을 나섰습니다. 용돈 20원을 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나선 등굣길에 구멍가게 들러서 각각 10원어치의 군것질을 했습니다. 물론 지불은 언제나 재홍이 몫이었습니다. 나는 가난한 가정경제로 용돈을 타본 적이 없기에 지불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재홍이는 청파국민학교로 나는 소의국민학교로 등교했습니다. 재홍이 덕분에 쫀드기같은 불량식품 맛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 겨울에 재홍이네는 신세계백화점에 말린 연어를 잘 포장해서 연말연시 선물로 납품을 하는 일거리를 맡아서 마당이 연어 말리는 선풍기 소리를 겨우내내 들어야 했습니다. 작업을 하다보면 취급부주의로 연어가 균열이 가는 경우가 생기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납품이 불가했습니다. 하지만 부스러기라도 고가의 생선이기에 재홍이 아버지의 허락없이는 유출되는 법은 없었지요.
무료하게 보내는 겨울방학 내내 혼자 집을 보고 있는 내게 재홍이는 그 연어 덩어리를 몰래 들고오곤 했습니다. 그러면 의기투합해서 부엌에 숨어들어서 연탄불에 구워먹곤 했지요. 찬밥덩이와 함께 먹는 그 구운 연어 맛은 특별했습니다. 엄마가 간혹 사오시는 임연수어나 고등어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습니다. 그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지금도 혀 끝에 남아 있습니다.
한번은 효창공원에 놀러갔다가 내가 장염에 걸려서 옴쭉달싹 못했는데 재홍이가 30분이나 나를 업고 집까지 데리고 왔지요.
아침마다 떼를 써가며 기어이 20원을 집요하게 타내 친구에게 군것질을 시켜주던, 아버지의 감시의 시선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말린 연어를 들고와서 연탄불에 구워먹으며 히히덕거리던 그 친구, 효창공원에서 집까지 나를 업고 오면서 내 안부를 살피던 그 착한 친구.
이름은 박재홍, 이젠 60대 중반으로, 지하철 공짜타는 지공거사의 반열을 앞두고 있을 그 친구를 찾고 싶습니다. 같이 쫀드기를 먹고 연탄불 생선구이집에서 막걸리라도 나누고 싶네요. 물론 계산은 전부 제가 합니다.
재홍이를 생각하면서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을 듣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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